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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안전자산' 금 가격이 전쟁 속에서도 힘을 쓰지 못하는 이유

​이승희 (세계문화예술신문 편집장 / 다행 자산경영 인생연구소 소장)

 

지정학적 위기나 전쟁 소식이 들려오면 시중의 돈은 자연스럽게 '안전자산'으로 몰려들기 마련입니다. 그중에서도 인류 역사상 가장 오래된 안전자산인 '금'은 위기 상황마다 가격이 치솟는 것이 일종의 불문율처럼 여겨져 왔습니다. 하지만 최근 시장에서는 포성이 울리고 불안감이 커지는 상황 속에서도, 오히려 금 가격이 떨어지는 이상 현상이 펼쳐지고 있습니다.

​"위기일수록 금을 사야 한다"던 오랜 믿음이 왜 지금은 작동하지 않는 걸까요? 전문 용어 뒤에 숨은 거시경제의 톱니바퀴를 우리의 삶의 언어로 차근차근 풀어보겠습니다.

 

첫째, 금의 가장 무서운 천적은 '높은 금리'입니다

​전쟁이나 분쟁이 터지면 가장 먼저 반응하는 것은 석유, 즉 유가입니다. 유가가 뛰면 물가가 오르는 인플레이션 우려가 다시 불타오르고, 중앙은행은 물가를 잡기 위해 금리를 낮추기를 주저하거나 고금리를 유지하게 됩니다.

​여기서 금이 가진 결정적인 약점이 드러납니다. 금은 아무리 오래 쥐고 있어도 이자나 배당을 주지 않는 자산입니다.

​은행이나 채권 금리가 높을 때는 사람들의 셈법이 달라집니다. "이자 한 푼 나오지 않는 금을 쥐고 있기보다는, 차라리 높은 이자를 주는 은행 예금이나 국채에 돈을 맡기는 게 낫겠다"고 판단하는 것이죠. 금리 인하에 대한 기대감이 약해지면서 금을 팔아 치우려는 자금이 늘어나고, 결국 가격이 하락하는 것입니다.

 

둘째, 달러의 힘이 너무 강해지면 금은 외면받습니다

​글로벌 시장에서 금 가격은 언제나 미국 달러(USD)로 매겨집니다. 최근처럼 달러 가치가 상승하는 '강달러' 국면에서는 금의 매력이 상대적으로 떨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달러 자산만 쥐고 있어도 충분히 높은 수익률과 안정성을 동시에 얻을 수 있는 데다, 달러 가치가 올라가면 다른 나라 통화를 쓰는 투자자들 입장에서는 금을 사들이는 비용 부담이 커지기 때문입니다. 지난해만 해도 달러의 영향력을 줄이려는 '탈달러화' 바람을 타고 금값이 급등했지만, 지금은 다시 막강해진 달러의 기세에 밀려 금 수요가 주춤해진 상황입니다.

 

셋째, 지수의 숫자가 아닌 '경제의 계절'을 보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그렇다면 이제 금의 시대는 끝난 것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지금의 금값 하락은 영구적인 추세의 꺾임이라기보다는, 금리와 환율이라는 거대한 물줄기가 만들어낸 '일시적인 숨고르기'로 보는 것이 타당합니다.

​향후 유가가 다시 안정되고 금리 인하 흐름이 본격화되거나, 달러 가치가 약세로 돌아서면 금은 언제든 다시 강력한 자산 보호의 수단으로 떠오를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단편적인 뉴스와 공포감에 흔들려 무작정 현상에 뛰어드는 것이 아니라, 거시경제의 두 축인 '금리의 방향' 과 '돈의 가치(환율)'를 조용히 관찰하는 일입니다. 시장의 일시적인 파도에 흔들리지 않고 거대한 바다의 밀물과 썰물을 읽어낼 때, 비로소 나와 내 가족의 소중한 자산을 단단하게 지키고 조율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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